(2016년 9월 30일 구역예배공과)
“보라, 이 사람이라!”
요19:1-8
“보라, 이 사람이라!”
예수님의 심문이 계속되고 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일차 심문한 후 예수님이 반란을 일으킬만한 위험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흥분한 백성과 예수님을 미워하는 유대인 지도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예수님을 때려서 놓으려고 하였다. 군병들이 예수님을 끌고 가서 채찍으로 때리고, 조롱하는 의미로 그의 머리에 가시로 만든 관을 씌우고, 왕이 입는 자색 옷을 입히고, 왕의 지휘봉 대신 손에 갈대를 들게 하였다.
이제 빌라도는 예수님을 고소하는 사람들 앞에 세우고 말하였다. “보라, 이 사람이라!” (혹은 “이 사람을 보라!”로도 해석될 수 있음.) 무슨 의미인가? “이 사람을 봐라. 이게 너희들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고소한 사람이다. 이렇게 무력하게 서 있는 예수는 로마제국에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자가 아니다. 그러니 이쯤하고 놓아주도록 하자.”
하지만 “보라, 이 사람이라!”고 하는 말에는 좀 더 깊은 숨겨진 의미가 있다. 때로 악한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 자신들의 의도와 관계없이 진리로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예수님을 죽이려는 대제사장 가야바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요11:50) 가야바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사람들을 설득한 말이지만, 이 말이야말로 예수님의 구원 사건을 잘 묘사해 주는 말이다. 또한 빌라도도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보라, 너희의 왕이로다!”(요19:14) 빌라도는 예수님을 조롱하는 투로 말하였지만 역시 진리를 말하고 있다.
오늘의 말씀 “보라, 이 사람이라!”는 빌라도의 말도 숨겨진 깊은 의미가 있다. 빌라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위대한 진리를 말하였다. 하나님은 원수들의 악한 입도 진리를 위해 사용하시는 반전(反轉)의 하나님이시다.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참 사람이다.
“보라, 이 사람이라!”는 말은 “여기 참 사람이 있다. 이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의도하셨던 사람의 본래 모습을 가지신 분이다. 진짜 사람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려면 이 사람을 보아라.”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예수님도 자신을 가리켜 말할 때, ‘인자’(人子) 즉 ‘사람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또 성경은 예수님을 ‘맏아들’이라고 하는데(롬8:29; 히1:6), 이는 예수님이 친히 사람이 되셨고, 우리는 그를 따르는 동생들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그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주 좋은 사람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는 것은 좋은 사람이 된다는 말과 같다. 예수님을 믿으면 사람에게서 멀어지고, 교회에서만 살고, 신앙적인 용어를 남발하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잘못 아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예수를 믿으면 인간성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참된 인간이 된다.
이 세상의 모든 학문과 철학과 종교들은 모두 사람에 대하여 말한다. 이들이 진리를 조금씩 담고 있기는 하지만, 온전하지 못하고 만족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인간, 특히 우리 예수님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는 완전한 인간을 발견할 수 있다. 좋은 사람이 되는 법을 예수님을 통하여 배우자.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 사랑의 방법임을 알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자.
둘째, 예수님은 죄와 고통이 가득한 세상에서 참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빌라도가 “이 사람을 보라!”고 할 때의 예수님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온 몸에 채찍을 맞아 만신창이가 되었고, 머리에 쓴 가시관에서 흘러나온 피가 굳어 있고, 찢어지고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다. 이게 진정한 사람의 모습인가? 좋은 사람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하는가?
사람의 모습이 아름다운 것이 분명한데, 꼭 그렇게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서로 갈등이 있고 고집을 피우며, 나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또한 사람이다. ‘인간적’이라는 단어가 소박하고 인정 많고 의리 있는 사람이라는 좋은 뜻으로 쓰일 때도 있다. 하지만 같은 단어가 인간의 약함과 사악함에 대한 실망을 표현할 때도 사용된다. 원래 사람의 모습은 아름다웠는데, 타락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사람은 그 영광을 상실하였고, 타락하고 부패하여 썩은 내가 진동한다. 세상은 죄와 고통으로 얼룩져 있다.
이런 세상에서 참된 사람이 되는 것은 고통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선한 일을 하려는 사람은 자신을 희생해야 하고, 이 세상의 변화를 위하여 선한 일을 하려면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약은 사람은 자기 혼자 사는 길을 찾고 위험으로 뛰어들지 않겠지만, 의미 있는 일을 하려는 사람은 고난을 당하기 마련이다. 죄와 고통이 가득한 세상에서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누리며 균형 있는 사고를 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서로 나누어 보자.
1.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라는 노래와 같이 사람이 아름답고 소중해 보일 때가 언제인가? 또 사람에 대하여 실망한 적이 있다면 어떤 경우였는가?
2. 예수님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아 친근하게 느낀 적이 있다면 서로 이야기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