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21일 구역예배공과)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모친을 생각하시다.
요19:25-27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고통 중에, 십자가 곁에 계신 모친 마리아와 사랑하는 제자 요한을 보셨다. 여인들은 반역을 일으키는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에, 또한 요한은 아직 어렸기 때문에, 십자가 밑까지 올 수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모친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옆에 있는 사랑하는 제자인 요한을 가리키며,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여자여’ 라는 말은 당시 헬라 세계에서 여인을 높여 부르는 존칭이었다.) 또한 제자 요한에게 말씀하셨다. “보라. 네 어머니라.” 이때로부터 이 제자 요한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
아주 짧은 장면이지만 이 이야기는 성경에 기록된 많은 감동적인 이야기 중의 하나이다. 예수님이 하신 많은 말씀과 행적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없다. 예수님이 어머니를 부탁하신 이 장면도 짧지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씀이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
첫째, 예수님은 어머니를 긍휼히 여기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연히 어머니를 발견하고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이 갑자기 생겨서 마침 곁에 있던 요한에게 부탁하신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어머니 마리아를 긍휼한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셨다.
마리아의 일생은 참으로 기구하였다. 처녀의 몸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였고,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아이를 낳았으며, 이집트로 피신하기도 하였다. 예수님을 낳은 후 요셉과의 사이에서 네 아들과 딸들을 낳은 후 남편 요셉은 아마도 일찍 세상을 떠났다. 예수님이 30세 이전까지 목수의 일을 하여 모친과 동생들을 부양하였으나, 30세 되던 해에 어머니와 집을 떠나 공적인 삶을 시작하였다. 예수님이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마침내 가장 저주스런 죽음을 죽게 된 것이다. 잠시 후면 마리아는 축 늘어진 아들의 시신을 팔에 안고 혼절하게 될 것이다. 이런 마리아의 심정을 성경이 한 마디로 이렇게 표현한다. “칼이 네 마음(영혼)을 찌르듯 하리라.” (눅2:35)
예수님은 이런 어머니를 잊은 적이 없다.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에서 기도할 때 그의 어머니를 위하여 빌었다. 한번은 예수님이 가난한 과부의 외아들이 죽음을 당하여 상여가 나가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과부의 슬픔이 예수님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어머니의 모습과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다. 과부에게 다가가서 “울지 마시오!” 위로하였고, 관을 향하여 명령하니 죽은 아들이 되살아났다.(눅7:11-17) 이제 십자가 위에서 어머니를 보니 그를 향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불같이 솟구쳤다.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하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고, 고통이 영혼을 압도하는 순간이었지만, 어머니를 향한 마음을 가눌 길 없어, 그를 요한에게 부탁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인류 구원의 대업을 이루면서도 자신의 어머니를 긍휼히 여기신 분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가까이에 있는 가족들을 긍휼히 여겨야 한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엡4:32상)
지금 예수님이 어머니를 긍휼히 여기는 것은 아무런 대책 없는 동정심이 아니다. 사람들의 가련함을 다 체험하시고 몸소 짊어지신 분,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인류에게 승리는 주시는 분이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예수님의 한 마디에 마리아의 모든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고, 모든 두려움이 확신으로 변하였다. 우리가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긍휼을 베푸는 것이다. 예수님의 영이 우리에게 긍휼한 마음을 주시고, 위로의 능력을 주시는 것이다.
둘째, 예수님은 또 하나의 가족, 교회를 예견하셨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는 것은 단지 어머니의 노후를 부탁한 것이 아니다. 만일 어머니의 노후를 부탁하려면, 예수님의 큰 동생인 야고보를 찾아서 그에게 어머니를 맡기라고 했어야 옳을 것이다. 지금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를 제자들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제자들이 함께 또 하나의 가족, 교회를 이루라고 말씀하신다. 과연 이 말씀에 따라 예수님 승천 후에 제자들과 예수님의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이 기도하다가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 (행1:14,2:4) 그리고 이들이 바로 최초 교회의 시작이 되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예수님의 혈연인 어머니를 부탁할 정도로 친밀한 공동체이다. 교회는 가족과 같은 친밀함을 가진 곳이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이기주의에 빠져 있고, 온 사회가 가족이기주의의 한계를 넘어가지 못하지만, 가족을 뛰어넘어 가족과 같은 친밀한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이다.
교회는 혈연이나 이익에 의한 관계가 아닌데, 가족과 같이 친밀한 특별한 공동체이다. 내어 놓지 못하는 부끄러운 문제를 서로 내어 놓고, 자기 일처럼 울면서 걱정하며 기도한다. 서로를 돌보며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고 최선을 다하여 섬긴다. 본 적도 없는 청년들을 위하여 혹은 외국의 성도들을 위하여 헌신한다. 누구의 칭찬이나 인정을 기대하지 않으며, 때로 오해를 받고 욕을 먹을지라도 기쁘게 감수한다. 이 가족 안에는 어떠한 편견도 차별도 없다. 바로 우리 예수님이 세우신 공동체의 모습이다. 그 공동체가 십자가 위에서 모친을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서로 나누어 보자.
1. 가까운 사람을 위하여 불쌍히 여기고 기도하였더니, 상대가 위로를 받고 치유된 경험이 있는가?
2. 교회 공동체에서 가족과 같은 친밀함을 느낀 적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