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7일 구역예배공과)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심
행1:6-11
우리말 사도신경의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는 구절은, 마치 예수께서 승천 후 잠시 쉬셨다가 심판을 시작하는 것처럼 들려 진다. 지상의 삶에서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 지는 수고를 하였으니 이제는 영광을 누리라는 말인가? 예수님의 사명은 지상의 사역을 다하였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 가셔서 하나님 우편에서 하시는 일이 무엇일까?
첫째, 예수님은 왕위에 올라 교회와 세상을 통치하신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다는 말은 왕자가 부왕(父王)의 오른편에 앉아 그를 대리하여 세상을 통치한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승천과 다스림에 대한 성경의 말씀이다. “주께서(성부 하나님) 내 주에게(예수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행2:34,35)
왕이 앉아 있는 것은 앉아서 쉬는 것이 아니라, 가장 적극적인 통치행위이다. 왕은 앉아 있고 대신들은 부복하고 서 있다. 왕이 왕좌에 앉아서 판단하고 명령을 내리면 그것이 곧 법이 되며, 왕이 앉아서 옥새를 찍으면 그것이 법령이 된다.
또한 “원수로 발등상이 되게” 한다는 말은, 고대 왕들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적장이나 왕의 목을 밟은 데서 유래한 말이다. 지금 예수님은 하늘에서 쉬고 계신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의 왕으로서 세상을 통치하고 원수를 무찌르고 있는 중이다.
예수님이 왕으로 다스리는 영역은 교회와 세상이다. 첫째, 예수님은 교회를 다스리시는 교회의 왕이시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고 교회는 그의 몸이다. 예배는 그의 왕이심을 찬양하며 그에게 순종하겠다는 서약이다. 예배 시간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고 있음을 체험하여야 한다. 세상에서 고통 받던 성도들이 예배를 통하여 예수님의 통치를 느끼며 안식과 평안을 누려야 한다.
교회는 왕이신 예수님의 성품이 나타나야 한다. 거룩하신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기에 거룩해야 하고,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대하는 예수님이기 때문에 어떠한 높낮이도 있어서는 안 되고, 사랑의 예수님이기에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이 교회를 다스릴 때 직분자들을 세워서 다스린다. 왕이 장관이나 지방관을 임명하여 자신의 이름으로 다스리도록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교회의 직분자는 예수님을 닮아서 섬김으로 다스리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교회의 최종 책임자는 예수님이다. 때로 그가 개입하여서 교회를 어지럽히는 자들을 벌하시고, 직분자들이 잘못된 길을 갈 때 질서를 바로 잡음으로, 교회를 수호하신다.
둘째 예수님은 온 세상과 우주를 통치하시는 분이다. 왕의 대리인인 성도들이 세상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그리스도의 무릎에 온 세상이 꿇리도록 해야 한다.
예수님이 우리 교회를 왕의 집행관으로 부르셨는데, 우리 교회가 세상에서 하는 일이 무엇인가?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다!”는 예수님의 탄식어린 말씀처럼,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교회가 없는 곳이 없고 목회자들은 넘쳐나지만, 복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여전히 많이 있다. 지역적으로 십자가 불빛을 볼 수 없는 곳은 없지만, 계층, 직업, 세대, 정치적 성향 등에 따라 복음이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의 그룹이 무수히 존재한다. 우리 교회가 추수할 곳을 위하여 일꾼을 배출하는 베이스캠프가 되어야 할 텐데...
둘째, 예수님은 하나님 오른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변호하시고 간구하신다.
교회와 세상에서 예수님을 대리하여 그의 뜻을 행하는 것은 영광스런 일이지만 고난과 박해와 조롱이 따른다. 또 때로 연약하여 넘어지고 죄를 지을 때도 있다.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8:34)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연약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이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신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2:1) ‘대언자’는 ‘변호인’이라는 의미이다. 재판장 앞에서 피고를 대신하여 대언하고 변호하는 사람 말이다. 피고는 연약해져 있고 판단력이 흐린데, 변호인이 그 곁에서 법률적으로 도움을 주고 나아가서 위로자요 의지할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런 변호사가 있다. 피고인의 사정을 잘 안다. 왜 그런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 그의 과거가 어떻고 약점이 무엇인지를 잘 안다. 법을 잘 알기 때문에 법조항을 조목조목 들어서 이 사람의 죄를 경감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여 간절히 변호한다. 나중에는 재판장에게 이 사람을 대신하여 벌을 받겠다고 한다. 하도 간청하여 재판장이 무죄를 선고하니, 둘이 얼싸안고 기뻐한다. 바로 이 변호사가 우리 예수님이시다. 바로 우리의 대언자요 변호사이다.
서로 나누어 보자.
1. 우리 사회에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곳, 예수님이 왕으로 다스리지 않고 있는 곳이 어디인가?
2. 내가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경험을 한 일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