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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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6:9-15; 18:21-35 주기도문 강해 (2017.10.29) |
주기도문의 다섯 번째 간구는 죄 용서를 위한 기도이다. 죄악이 많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세 가지의 기도 가운데 두 번째이다. 죄 용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사람이 죄를 지을 때 하나님과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빚을 갚거나 형벌을 받아 죗값을 치른다고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파괴된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것이다. 마음에 맺힌 것이 풀리고,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며, 호의의 손을 내미는 것이 용서이다.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하여 내 영혼이 해방과 자유를 맛볼 때, 이웃과 화해하여 서로 막힌 것이 없고 그 평화가 세상으로 흘러갈 때,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 한 가운데 천국이 이루어진다. |
※ 하나님의 용서와 우리의 용서
다섯 번째 간구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우리가 용서 받는 것과 우리가 이웃을 용서하는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주기도문에 이은 예수님 말씀에서도,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6:14,15)고 하였다. 이 말씀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우리가 먼저 이웃들을 용서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하신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의 희생을 보시고 무조건 우리를 용서하는 분이 아니던가?
하나님의 용서와 우리의 용서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까? 우리는 마18:21-35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비유를 통하여 그 답을 얻을 수 있다. 임금으로부터 10,000 달란트(1달란트=6천 데나리온)나 되는 돈을 탕감 받았으나 동료가 100 데나리온(1데나리온=노동자 하루 품삯) 빚진 것을 용서하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이다.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큰 용서를 깨닫게 하옵소서. 그래야 우리도 형제를 용서할 수 있겠나이다.
(1) 하나님의 용서는 우리가 하는 용서의 모범이요 동기가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을 보고 용서를 배우게 되며,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큰 용서(일만 달란트)를 받음으로 우리의 마음이 너그러워져서 이웃의 작은 잘못(백 데나리온)을 용서할 수 있게 된다. 자기 자신의 문제에 얽매여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용서할 여유가 없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사랑을 할 수 있고, 용서를 체험한 사람이 이웃의 잘못을 용서할 수 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마18:33)
(2)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하는 것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다. 인간관계의 문제로 고통을 받는 성도는 기도하기 마련이다. 그는 간절한 기도 가운데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에 이르게 되며, 그 순간 하나님은 그에게 용서의 하나님으로 다가오신다. 하나님의 사랑을 맛본 사람은 나와 어긋난 관계에 있는 사람을 용서하게 된다. 하나님의 호의 어린 얼굴을 본 야곱은 원수지간인 형 에서를 만났을 때,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창33:10)라고 고백하였다.
(3) 하나님은 아무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우리를 쉽게 용서하신 것이 아니다. (1만 달란트) 독생자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 죄의 값을 치루셨다. 용서는 그만큼 무거운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영화 “밀양”) 이 용서를 알게 될 때 우리는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까지도 용서할 힘을 얻게 된다.
둘째,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우리가 이제는 용서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1)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형제를 용서하게 된다. 형제를 용서하는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은 영적 유익이 주어진다.
① 하나님의 용서를 더 풍성히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게 된다. 우리는 이미 용서를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웃과의 관계가 막혀 있다면 하나님의 애정과 호의를 누리지 못한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18:35)
② 영혼이 자유와 평온을 얻는다. 독선과 아집으로 뭉쳐진 좁은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마음을 활짝 열어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짐을 느낄 것이다.
③ 복수가 복수를 낳고, 원한이 원한을 불러일으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세상에 화해의 물결을 흘려보내게 된다. 자기를 죽이려던 사울 왕을 두 번씩이나 살려준 다윗은(삼상 24장, 26장) 새로운 나라를 열었다. 초대교회 순교자들은 자기를 박해하는 자들을 축복하며 죽어갔다. 잔인하고 포악한 로마제국이 원수 사랑의 기독교 앞에 굴복하였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눅6:2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