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교안(5월 16일)

by 운영자 posted May 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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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예배 교안


■  일    시  5월 16일(토)
■  사도신경
■  찬    송:  ‘신자 되기 원합니다“
■  말    씀:  마7:21-23 /  내 아버지의 뜻대로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1. 내 아버지의 뜻대로 vs 불법
   오늘 본문에는 <반대되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21절에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 그리고 23절에 나오는 <불법을 행하는 자>입니다. 무엇이 다를까요? 행하는 것과 행하지 않는 것이 다를까요? 아닙니다.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과 마찬가지로, 23절에 나오는 사람들도, 불법을 <행합니다>. <행하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면, 행하기는 하는데, <나쁜 행동>을 하느냐, <선한 행동>을 하느냐, 좀 더 좁혀서 말하면, 성경 말씀을 행하느냐, 아니면, 성경에 없는 일들을 행하느냐 ... 이것이 차이일까요?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선지자,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하는 것, 다 성경에 있습니다. 여러분,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는 것, 성경에 나옵니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권능을 행하는 것, 다 성경에 나오는 좋은 일들이에요. 그러면, 성경에 나오는 것들을 행하고 있는데, 왜 우리 주님께서는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실까요? <불법>이 무엇입니까? 불법의 반대인 <내 아버지의 뜻>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마 7:23 ...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는 말씀 직전에,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예수님께서 모르신다고 하십니다. 이 말은 <이름>을 모른다, <주소>를 모른다는 의미가 아니고, <인격적인 관계>, <친밀한 관계>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평생, 분명하게, 마음에 새겨야 할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법은 <마음의 법>입니다. 주님의 법은 <중심의 법>이고, <진심의 법>입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의 법이 <마음의 법>이고, <중심의 법>이고, <진심의 법>입니까? 주님께서는 주님의 백성들인 우리 <속에>, 우리 <마음에>, 주님의 법을 기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없는 순종, 하나님께 진심을 드리지 않는 선한 행위들 ... 선지자 노릇, 귀신을 쫓는 것, 권능을 행하는 것, 이 좋은 일들이, 이 성경적인 일들이, 진심을 드리지 않으면, <불법>이라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합법>이에요.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러나 그 <중심>은 하나님을 따르지 않습니다. <중심>은 하나님을 의지하지도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진심으로> 바라보지도 않고, <진심으로> 그 은혜에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성령님을 멸시합니다. 기도의 능력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겨서, 수고와 시간을 들여 기도하는 것을 헛된 것으로 여기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상식적인 그리스도인, 고상한 그리스도인으로 멈춰 서있는 것입니다.


2. 기준을 바꾸십시오
     주님의 법이 <중심의 법>이고, <마음의 법>이고, <진심의 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을 보는 기준이 달라집니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권능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불법>을 행한다고 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요. 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내가 보는 것은” ...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처럼 <외모>를 보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외모가 탁월할수록, 외적인 조건들이 좋을수록,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더 불안합니다. 여러분, 외적인 것이 혹 나아지셨습니까? 10년 전, 2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부유해지셨습니까? 중요한 사람이 되셨습니까? 힘있는 사람이 되셨습니까? 축하드립니다. 그러나 여러분, 위험해지셨습니다. 대하 26:16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 웃시야는 열여섯 살에 왕이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며, 경건하고 능력있게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이 교만해졌습니다. 왜요?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 강해지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게 아니에요. <넘어질 가능성>, <하나님과 멀어질 가능성>이 높아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입니다. 성경을 읽어보세요. 주변의 사람들, 우리를 스쳐 지나갔던 많은 사람들을 떠올려 보세요.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 딱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을 바라보는 기준을 바꾸어야 합니다. 내 인생과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바라보는 기준>을 바꾸어야 해요.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 얼마나 높아졌는가, 얼마나 힘이 많아졌는가 ... 이것이 아닙니다. 그 대신, 내가 얼마나 하나님과 가까이에 있는가, 저 사람이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운가 ... 이것을 기준으로 삼고 인생을 봐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강성해지는 것, 부유해지는 것, 높아지는 것으로 사람보는 기준으로 삼지 마십시오. 그 대신, 하나님과 가까이에 있는가, 멀리 있는가 ... 이것으로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바라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부모님의 축복기도 (자녀들을 위한 축복기도)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정말로 진심으로, 주님을 믿게 하옵소서. 진심으로 신자 되게 하옵소서. 아멘”


■  주기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