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교안
■ 일 시 6월 6일(토)
■ 사도신경
■ 찬 송: ‘달고 오묘한 그 말씀“
■ 말 씀: 마7:24-27 / 반석 위에 지은 집 3
마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1.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이고, 듣고도 행하지 않으면 모래 위에 지은 집입니다. 말씀을 <행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행하는 것에 대해 강조하는 성경이 <야고보서>입니다. 약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영혼>과 매치가 되는 것이 <행함>입니다. 그리고 <몸>에 해당하는 것이 <믿음>이에요. 그러니까, 영혼이 떠나버리고 몸만 있으면, <죽었다>고 합니다. 몸이 그대로 있어도, 영혼이 떠나가면 그 몸은 죽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행함이 없고 믿음만 있으면, 그 사람의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보통은, <행함>은 <몸>으로 하는 것이니까, <행하는 것>이 <몸>에 해당하고, <믿음>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니까, <영혼>, <영적인 일>에 속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믿음이 없는 행함은 죽은 것이니라” 이렇게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마음>으로 하는 <믿음>이 있다고 해도, <몸>으로 하는 <행함>이 없으면, 그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행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해요. 그리고 말씀을 행하는 것은 영혼에 속한 것입니다. 영적인 일이에요. “나는 믿음이 있으니까, 신앙고백이 확실하니까, 행하지 않아도 괜찮다. 예배 잘 드렸으니, 집에서, 직장에서는 마음대로 살아도 괜찮다” ... 여러분, 안 괜찮습니다. <죽은 믿음>일 수 있습니다.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들음과 행함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듣고>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었는데, 행하지 않습니다. 듣기는 똑같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행하고, 어떤 사람은 행하지 않습니다. 차이가 무엇일까요? 약 1: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요. 들어서 마음에 심겨집니다. 그런데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하십니다. 말씀이 마음에 심어졌으면, 다 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성경은 말씀이 마음에 심겨지는 것과, 우리가 <받는 것>이 다르다고 하십니다. 말씀이 마음에 심겨지는 것, 말씀의 씨앗이 우리 마음에 뿌려지는 것, 듣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심겨진 말씀, 들은 말씀을 <받는 것>은, 다른 문제에요. 여기에 나오는 <받는다>는 말씀이 성경에 많이 나오는데, 대부분은 <받는다>, 또는 <영접한다> 라는 의미입니다. 눅 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예수님을 기다리던 시므온, 성령이 충만하여서,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시므온이 드디어 예수님을 만났어요. 이때 시므온이 아기 예수님을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 <안고> 라는 말씀이 온유함으로 <받으라>와 같은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시므온이 예수님을 어떻게 안았을까요? 대충 안았을까요? 아니지요. 매우 귀하게, 매우 소중하게 예수님을 <안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러면,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심어진 말씀, 이미 말씀을 들어서 알고 있어요. 직접 읽었든지, 귀동냥으로 들었든 지, 아무튼 말씀이 내 마음에, 내 머리에 있어요. 그런데 <이 정도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받아야>합니다. 들은 말씀을, <받들어야> 하고, <안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말씀을 들을 때, 들어서 내 속에 들어온 말씀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3. 말씀은 영혼의 빛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면, 우리에게 참 좋습니다. 시 119:176 잃은 양 같이 내가 방황하오니 주의 종을 <찾으소서> 내가 주의 계명들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주의 종을 찾으소서... 물론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 있어도, 바다 끝에 있어도, 아무리 어두운 곳에 있어도 알고 계시고 찾아내십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이 말씀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잃은 양 같이 내가 방황하오니 ... 고난이 많아서, 너무 힘들어서, 길을 잃은 양처럼, 정신을 잃고 헤매고 있어요. 돌아갈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를 좀 찾아 달라”고 합니다. 내가 주님을 찾을 힘이 없어요. 주님께서 나를 좀 찾아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을 보세요. 원래는 <왜냐하면> 이라는 접속사가 있습니다. “주의 종을 찾으소서. 왜냐하면 내가 주의 계명들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주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 힘든 상황 속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제가 꼭 붙들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시고, 저를 찾아주십시오” 라는 것입니다. 귀한 신앙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말씀을 잊지 않고, 비록 한 말씀이라도, 그 말씀을 받들고, 안고 있으면, 주님께서 <우리 속에 있는 말씀을 보시고>, 우리를 찾아내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말씀은 영혼의 빛입니다. 주님께서 이 빛을 보십니다. 그래서 말씀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받들면, 말씀을 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바닥, 감당할 수 없는 인생의 어두움 가운데서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찾아내실 수 있습니다.
■ 부모님의 축복기도 (자녀들을 위한 축복기도)
“주님, 말씀을 소중하게 받들게 하옵소서. 말씀을 듣고 행하게 하옵소서. 아멘”
■ 주기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