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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318일 구역예배공과)

 

죽음 앞에서 고뇌하시다

12:27-33

 

소크라테스 vs 예수님

예수님은 십자가 지기 며칠 전 이렇게 외치셨다.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12:27) 예수님의 마음은 괴로움으로 동요하였고, 심지어 십자가를 지지 않고 이때가 지나가기를 기도하기까지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예수님에게 천둥소리와 같은 큰소리를 주셔서 용기를 주었다.

예수님이 이렇게 십자가 지는 것을 어려워하셨다는 말씀은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다. 그 고뇌의 절정은 십자가 지기 하루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였다. 마음이 너무 괴로운 나머지, 땀구멍에서 핏방울이 맺힐 나올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 때도 역시 아버지 할 수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고 하다.

십자가를 앞에 놓은 이와 같은 예수님이 마음과 행동은, 죽음을 맞이하는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비교해 볼 수 있다. 그도 예수님처럼 억울하게 사형판결을 받고, 독배를 마시고 죽어야 하였다. 그의 제자 한 사람이 간수에게 뇌물을 주어 탈옥을 권유하였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를 거부하였다. 사형날도 제자들과 쾌활하게 대화한 후 태연히 독배를 마셨다. 죽기 직전 아스클레피우스 신(=치유의 신)에게 수탉 한 마리를 바쳐야겠다.”고 유언을 남겼다.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많은 사람의 영혼을 치유한 것을 감사하라는 의미이다. 소크라테스는 죽음 앞에서 당당하였다.

반면 왜 예수님이 이렇게 죽음 앞에서 괴로워하셨을까? 예수님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사셨고,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면서 죽으셨다. 마치 어린아이가 아버지의 짐의 무게를 알 수 없는 것과 비슷하고, 부도의 위기에 놓인 사장의 심정을 말단 사원이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세상의 어떤 위대한 사람도 예수님이 지신 짐과 같은 무거운 짐을 지지 않았다.

예수님이 죽으실 때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우리가 눈으로 보는 십자가가 전부가 아니다. 예수님이 과연 실제로 무슨 고통을 당하였는지 우리의 생각과 경험으로 전혀 알 수 없다. 다음의 3가지는 예수님의 고통을 인간이 짐작할 수 있도록 보여주는 것들이다. 첫째, 십자가에서의 죽음: 예수님의 고통은 죽음 이상이었지만,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강한 고통이 십자가 죽음이기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께서 음부에 내려갔다는 신앙고백: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당한 고통이 지옥의 고통과 같다는 말이다. 셋째,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음: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27:46) 라고 외치셨다. 사랑으로 연합하였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였는데, 아버지가 아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보아 고개를 돌린 것이다.

이렇게 십자가를 앞에 놓고 고뇌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우리는 고통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첫째, 예수님께서 고뇌하심으로 이루어주신 것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예수님이 지셨던 것은 세상 모든 사람의 죄와 고통이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보면서 한 말이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치워 없애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1:29)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양이나 염소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자신들의 죄를 말한 후, 짐승을 광야로 끌고 가서 버리는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심으로 이를 치워 없애셨다. ‘세상 죄라는 말은 세상의 모든 종류의 죄와 악이 포함된다. 우리의 예수님께서 지고 가서 치워 없앨 수 없을 만큼 극악한 죄가 없다. 성자의 고통 때문에 온 우주의 창조주가 나를 용서하시고 받아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당한 고통이 음부에 내려가신 것과 같았다. 이는 내가 깊은 두려움과 유혹의 공격을 받을 때에, 나의 구주이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또한 그의 온 생애동안 형언할 수 없는 영혼의 고뇌와 고통과 공포를 당하심으로, 지옥과 같은 고뇌와 괴로움으로부터 나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확신하게 해 주기 위해서이다. (하이델베르크교리문답 제44) 지옥과 같은 고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희망이 있다.

 

둘째, 예수를 진실히 믿으면 예수님처럼 괴로운 마음으로 살게 된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 받고 평안과 안식을 얻는다. 하지만 이전에 하지 않던 고민이 시작된다. 우선 내가 아직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괴롭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 가운데 들어간 사람은 양심이 예민해져서 이전에 별로 죄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까지 괴로워한다. 또 지금 나는 용서 받았으나 내가 과거에 지은 잘못 때문에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더욱 괴롭다. 게다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드러나지 않은 죄까지도 환히 보이기에, 더 큰 고민에 빠지게 된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졌다는 믿음으로 기쁘게 복음을 믿고 행복을 누리며, 동시에 예수님처럼 괴로워하며 살게 된다. 복음의 기쁨이 크면 클수록 이에 비례하여 자신에 대한 회한과 세상에 대한 절망도 커진다.

 

서로 나누어보자.

(1) 나는 어떤 유형인가? 하나님의 용납을 체험하지 못하고 기쁨과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가, 아니면 예수님과 같은 고뇌가 없이 즐겁게만 살아가는가?

 

(2) 우리 주변에 지옥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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