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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617일 구역예배공과)

 

평화의 적()

14:25-27, 16:33

 

샬롬!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인사는 샬롬!”이다. ‘샬롬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전쟁이 없는 평온한 상태인 평화’, 사람들과 충돌과 다툼이 없이 사이좋게 지낸다는 뜻의 화평’, 걱정이 없이 마음이 평온함을 가리키는 평안. 이 외에도 안정, 건강, 번영, 형통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 단어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전쟁이 그치지 않다 보니 평화를 갈구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메시아의 시대가 오면 전쟁이 그치고 평화가 도래할 것이라고 믿고 소망하였다.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쟁기)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2:4)고 한 예언이 대표적이다. 메시아는 평화의 왕이라고 불리게 될 것이고, 전쟁을 상징하는 말과 병거가 아닌 나귀를 타실 것이라고 하였다.

마침내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오셨다. 그가 3년 동안 하신 일은 평화를 전하고 실천하는 것이었다. 그가 떠나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평안(샬롬)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샬롬)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14:27) 평화의 왕 메시아, 그가 온 인류가 희구하던 평화를 이루겠다고 하신다.

세상이 평화롭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들 사이에 왜 다툼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 평화를 방해하는 평화의 적()은 무엇일까?

 

첫째, 평화의 적() : 두려움의 영

우리 마음과 삶에서 평안을 없이하고 또한 온 세상에 평화 대신 분열과 다툼을 일으키는 것은 두려움이다. 예수님께서 평안(샬롬)을 말씀하시면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다.

두려움이 다 나쁜 것은 아니고, 합리적이고 적절한 두려움도 있다. 물과 불을 두려워하는 것이 마땅하고, 상관들과 다스리는 사람들을 두려워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그의 계명을 지킬 것이다. 하지만 그 두려움이 과도하게 되어 도리어 해를 끼칠 때가 있다. 사람들 사이에 어떤 대상을 혐오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부적절한 두려움을 포비아’(phobia) 병적 공포라 부른다. 두려움의 영()이 밀물이 몰려오는 것처럼 몰려와서 우리의 정신을 마비시키고,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대학 들어가기 어렵고 취업하기 어렵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여기에 두려움의 영이 함께 하게 되면 모든 부모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자녀들을 과도한 경쟁으로 몰아넣게 된다. 과도한 경쟁은 서로를 불신하게 만들고 결국 차별과 편견과 미움을 낳는다. 살기 어려워지면 두려움의 영이 사회를 지배하는데, 독일의 히틀러나 캄보디아의 폴포트와 같은 선동정치가들이 특정한 사람들에 대한 혐오를 부추겨 대량학살을 일으킨다. 한국을 둘러싸고 있는 국가들이 저마다 서로를 두려워하다보면 전쟁도 가능해진다.

 

둘째, 평화의 적() : 거짓된 자기만족

두 번째 평화의 적은 바로 거짓된 자기만족이다. 예수님은 당신이 주시는 평안이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다.”고 하셨다. 다른 말로 하면 세상이 약속하는 평화도 있다는 말이다. 세상도 평화를 약속하지만 실제로는 거짓된 속임수에 불과한 것이다. 예컨대 구약 예레미야 시대의 거짓 예언자들은,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6:14)라고 하였지만, 사실은 평강(샬롬)은 없었다.

한 때 사람들은 과학기술이 발전하여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민주주의가 정착되면 사회가 진보할 것이라 믿었다. 과거의 야만성을 버리고 평화로운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거짓된 자만심일 뿐이었다. 사실은 문명이 가장 발달한 20세기가 가장 야만적인 시대였다. 인간 내면의 두려움에서 비롯된 폭력성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종교 등으로 이름을 바꾸어가며 나타났다. 과학기술은 더 많은 사람을 죽이는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평화를 찾을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주신다고 하였는데 어떤 평안을 주셨는가?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희생을 통하여 우리를 받으심으로, 모든 두려움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주셨다. 세상이 이룰 수 없는 진정한 평화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음을 보여주신다. 십자가는 결코 피상적인 약속이 아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받아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움에서 해방되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섬기고,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신다.

이 속죄를 아는 사람들은 가해자들을 용서하고 포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이 생긴다. 이 용서를 받아 평화를 누리는 사람들은 이전투구 속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생겨 평화로운 중재자가 되기 위하여 헌신하기 마련이다.

 

서로 나누어 보자.

1. 내게 있는 가장 큰 두려움은 무엇인가? 이것이 어떻게 나와 내 주변의 평화를 앗아가는가?

 

2.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환경과 관계가 없이 주어진다. 이런 참 평안을 맛본 경험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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