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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94일 구역예배공과)

 

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

9:1-7

 

인과응보(因果應報)

인과응보란 선한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오고 악한 일을 하면 나쁜 결과가 반드시 뒤따른다는 믿음이다. 우리말 속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나, 일이 잘못되는 것 같아도 결국은 바르게 결론지어질 것이라는 사필귀정(事必歸正)도 같은 말이다. 대부분의 드라마나 소설은 권선징악(勸善懲惡,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한다.)이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한다.

인과응보 사상은 모든 인류의 마음에 새겨져 있는 하나님의 법으로서, 이 생각이 없으면 이 세상이 유지되지 않을 것이다. 벌 받을 것이 없다고 하면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하고 싶은 일들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일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자기를 돌아보고, 천벌을 받을까 무서워서 극악한 일을 하지는 못한다. 어렸을 적 엄마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훈육할 수 있고, 사회에서는 법과 규율과 정의가 시행된다.

그런데 문제는 인과응보의 법칙만 가지고 잘 설명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는데 있다. 예수님에게 주어진 질문도 바로 인과응보의 어려운 점 때문에 주어진 것이다. 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이 누구의 죄 때문에 이렇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이다. 인과응보의 법칙에 따르면 맹인으로 태어난 것은 분명 누군가의 죄 때문일 텐데 말이다. 만일 이 사람의 죄 때문이라고 한다면, 과연 사람이 복중에서 무슨 큰 죄를 지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고, 부모가 죄를 지어서 맹인으로 태어났다고 하면 부모의 죄값을 아이가 대신 받는 것 같아 정의에 어긋난다.

예수님은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답을 주셨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9:3) 무슨 뜻인가? 이 사람의 죄 때문도 아니고 부모의 죄 때문도 아니라면 인과응보의 법칙은 없어졌다는 말인가? 이 말은 인과응보가 없어졌다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항상 정의의 하나님이시고 계속해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의 뜻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누구의 죄인지를 가리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예수님이 누구의 죄인지 설명하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의 죄인지를 설명한다고 해서 죄와 고통의 현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자신의 죄 때문에 고통이 왔다고 설명해 주면 대개는 억울하다고 변명하고 분노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절망으로 나아가서 자포자기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맹인으로 태어난 이유를 가리는 일이 예수님의 일이 아니라면 예수님이 하는 일이 무엇일까? 바로 나를 보내신 이의 일즉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어떤 일이 하나님의 일인가?

 

첫째, 예수님은 맹인을 불쌍히 보시고 그의 고통을 자신이 품으셨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예수님의 차이점이 있다. 제자들은 이 맹인을 보고 궁금증이 들었지만, 예수님은 맹인을 보시고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제자들은 이 맹인이 아무 것도 모르고 생각도 없는 사람이라고 보았지만, 예수님은 그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고귀한 영혼이라고 생각하셨다. 제자들은 맹인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인가를 물음으로써 안 그래도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 종교적인 죄책감까지 얹어주었지만, 예수님은 이 사람이 고통과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하셨다.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2:13) 심판이 꼭 필요하지만 긍휼은 더 중요하다. 심판은 사람을 판단하지만, 긍휼은 사람은 다시 세우기 때문이다. 다윗왕의 명 판결 이야기를 들어보자. 홀로 된 여인이 다윗에게 와서 판결을 요청하였다. 두 아들이 서로 싸우다가 한 녀석이 형제를 쳐서 죽였다고 한다. 사람을 죽였으니 마땅히 사형을 받아야 하지만, 아들을 살려달라고 간청하였다. 다윗은 긍휼을 베풀어 그를 사면하였다.(삼하14:1-24)

사실상 이 재판은 다윗의 마음을 바꾸기 위한 설정이었다. 실제로 형제를 죽인 것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었고, 그를 사면해 달라는 것이다. 왕은 일단 판결을 내렸기 때문에 외국에 있는 자기의 아들 압살롬을 용서하고 데리고 오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 이후의 다윗의 삶은 이 아들로 인한 고통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다윗이 이 아들을 용서할 때는 이런 희생까지도 감수한 것이었다. 이게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다. 하나님의 긍휼이 심판을 이기고 인간을 용서하는데, 이 때 정의를 희생시킨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심판을 내리신 것이다.

 

둘째, 예수님은 무한하신 능력으로 그의 눈을 뜨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불쌍히 여기신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이 맹인을 위하여 하신 하나님의 일은 바로 그의 눈을 뜨게 하신 일이다.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시니,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다. 예수님은 그의 육신의 눈 뿐 아니라 영적인 눈도 열어주셨다. 육신의 고통에서 해방되었고, 그 고통을 준 죄로부터도 해방되었다.

예수님께서 이런 구원의 일을 감당하셨고 또한 우리에게도 맡기셨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9:4)고 하신 것은, 사람들에게 긍휼과 능력을 베푸는 일을 우리도 하여야 한다는 명령을 내리신 것임과 동시에, 그 일을 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열어주신 것이다.

 

서로 나누어보자.

(1) 인과응보의 법칙에 맞지 않는다고 일이 일어난 적이 있었는가?

 

(2) 큰 사랑을 베풀어 사람들을 고통에서 해방시키고 죄에서 돌이키게 한 경험이 있으면 서로 나누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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