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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911일 구역예배공과)

 

진흙을 바르고 실로암으로

9:1-7

 

본문은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만 해도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있었지만 특이한 방법을 사용하셨다.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만들어 그의 눈에 붙이시고, ‘실로암이라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다. 왜 이런 식으로 고치셨을까? 이는 중요한 영적인 의미가 있는 상징적인 행동이다. 어떤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자.

 

첫째, 진흙을 눈에 붙인 것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 창조의 재연을 상징하는 행동이다.

진흙을 이겨 바르는 예수님의 행동은 천지창조 때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을 연상케 한다.(2:7) 성부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만드신 것처럼 성자 예수님도 이 사람의 흉측하게 변형된 몸을 원래대로 돌려놓으시기 위하여 진흙으로 재창조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왜 하필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을까? 또한 이사야서에서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이렇게 말씀한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64:8) 마치 토기장이가 손으로 진흙을 주물러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신다는 뜻이다. 사람은 아무데나 땅을 파면 나오는 무가치한 진흙과 같은 존재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덩어리 진흙에 형체를 부여하여 그릇을 만드는 토기장이와 같이 우리를 빚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다.

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 속에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남에게 보이기 싫은 못난 모습, 부족하고 죄악된 부분이다.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힘든 세상 살다보니 나도 모르게 변하였는지, 아니면 날 때부터 그런 인자(因子)를 가지고 태어났는지... 아니면 괴물과 싸우다 보면 괴물이 된다고, 정의를 위해 투쟁하다보니 흉측하게 비틀어진 것인지... 아무리 바꾸려 해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바로 이때가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한 때이다. ‘예수님, 재창조의 능력으로 우리의 눈에, 우리의 몸에, 우리의 가슴과 머리에 진흙을 이겨 붙여 주옵소서.’ 기도할 뿐이다.

 

둘째, ‘실로암못은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킨다.

실로암못은 예루살렘 동남쪽에 있는, 크기 17.4m × 5.4m에 깊이가 5.7m가 되는 못이다. 이 못은 매우 특별하게 만들어졌다. 예루살렘은 높이가 약 800m 정도 되는 고지에 위치하고 있어서 천연의 요새지만, 강을 끼고 있지 않아 물이 부족한 것이 늘 문제였다. 빗물을 가두기 위한 몇 개의 큰 저수지를 만들었고, 또한 성 밖에는 물의 양이 많은 샘이 있어 거기서 물을 길어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고 성 밖으로 나갈 수 없고, 게다가 저장해 놓았던 물도 떨어지면, 꼼짝 없이 죽고 말 것이다.

유다의 왕 가운데 히스기야라는 탁월한 왕이 터널을 뚫어 성문 밖에 있는 샘의 물을 성 안으로 끌어들이는 공사를 하였다. ‘기혼샘이라 부르는 수원지에서 높이 약 2m, 1m, 길이는 533m에 달하는 땅속 50m 깊이의 터널을 만들고, 그 터널의 끝에 물을 가두는 저수지를 만든 것이다. 바로 이 샘의 이름이 실로암이다. 자체적으로 물이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멀리서 보내어졌기 때문에, ‘보냄을 받았다는 뜻을 지닌 실로암’(혹은 실로아’)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실로암은 바로 예수님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여러 차례에 걸쳐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자라고 말씀하셨다. 실로암이 보냄을 받은 물인 것처럼 예수님도 하늘에서 이 땅으로 보냄을 받은 생수라는 의미이다. 실로암으로 가서 씻는 것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마치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토기를 구운 후 묻어 있는 먼지를 씻어버리는 것과 같이, 아이를 낳은 후 아이에게 묻어 있는 엄마 뱃속의 이물질들을 깨끗이 닦는 것과 같이, 실로암 못이 상징하는 예수님에게 와서 새롭게 태어남을 축하하자는 의미이다.

그런데 실로암 못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실로암) 물을 버리고, 르신(시리아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북 이스라엘의 왕)을 기뻐하느니라.”(8:6) 실로암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상징하는 샘인데, 그 물은 양도 작을 뿐 아니라 천천히 흐른다. 시리아와 북이스라엘의 공격을 받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너무 부드럽고 약해 보였고, 대신 강대국은 큰 강물과 같아 보였다. 그들의 군대를 한편으로는 두려워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부러워하였다.

예수님의 도우심은 천천히 흐르는 실로암 물과 같다. 예수님은 군대를 끌고 왕으로 이 땅에 오지 않았고, 약한 종의 모습으로 오셨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셨다. 우리가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하나님의 이름을 조용히 부르면서 탄식하며 눈물을 흘릴 때,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다. 하지만 그 예수님의 도우심이야말로 진정으로 우리에게 행복과 평화를 주신다. 진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자신도 감당하지 못할 큰일을 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 품 안에서 평온을 찾기 원한다.(131:1-3)

 

서로 나누어보자.

(1) 찬송가 4251절을 조용히 불러보자. “진흙과 같은 날 빚으사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내 안에 창조의 주님이 새롭게 빚어주기 원하는 부분이 있는가?

 

(2) 하나님이 작고 부드러운 도우심이 에너지가 되어 큰일을 감당한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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