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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417일 구역예배공과)

 

사마리아 여인을 만난 예수님

4:1-26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

예수님과 제자들 일행이 유대 지방에서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갈릴리로 가고 있었다. ‘수가라고 불리는 한 마을 어귀에 도착하였을 때 이들은 모두 지쳤고, 제자들은 마을 옆의 우물가에 예수님을 남겨두고 음식을 사러 동네로 들어갔다. 이 우물은 이때로부터 거의 2천 년 전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인 야곱이 아들에게 주었다고 하는 유서 깊은 우물이었다. 한 여인이 성읍에서부터 물동이를 이고 나타났다. 당시에 물을 긷는 것은 여인들의 몫이었고, 여인들은 대개 여럿이 모여서 물을 길으러 왔지만, 이 여인은 홀로 물을 길러 나왔다.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예수님이 물을 좀 달라고 하면서 대화를 시작하였다. 4:7부터 26절에 이르는 긴 대화인데, 이 대화에서 알 수 있는 영적 진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사람은 영혼의 갈망을 가지고 있다.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은 여러 가지 면에서 3장의 니고데모와 대조된다. 니고데모는 유대인 남자였고, 여인은 유대인들이 싫어하는 사마리아인 여자였다. 니고데모는 지위가 높은 사람이었고, 반면 여인은 이름도 없는 낮은 여인이었다. 니고데모는 존경을 받는 정신적인 스승이었으나, 이 여인은 남자 다섯 명과 차례로 살다가 이제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는 여자였다. 혼자 물을 길러 온 것으로 보아 동네에서 손가락질을 당하고 따돌림 당했다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죽지 못해 사는 불행한 인생이었을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다른 이 두 사람이 모두 영생과 구원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니고데모도 자신이 추구하던 것이 진정한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진정한 영적인 거듭남을 위하여 밤에 예수님을 찾았다. 이 여인도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4:20)라고 물었다. 하나님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것 같은 여인의 입에서 나온 질문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영적인 갈급함으로 하나님을 찾고 있다. 기독교는 로마시대 가난하고 무지한 변방의 떠돌이들에게만 전파된 것이 아니라, 로마제국의 심장부인 장군과 원로원 가정에도 복음이 파고 들어갔다. 빈부와 귀천을 물론하고, 배운 것과 명예와 관계없이, 보수주의자도 진보주의자도, 그 공허한 영혼을 만족시킬 수 없다. 이 사실을 잘 아시는 예수님은 밤에 찾아온 지체 높은 니고데모에게 주저하지 않고 그의 영적인 문제를 지적하셨고, 우물가 여인에게 다가가서 말을 거셨다. 예수님은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누구도 꺼려하지 않으셨다.

둘째, 영혼의 갈급함을 채울 수 있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하신 말씀을 들어보자.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0) 예수님은 자신이 주실 물을 가리켜 생수라고 하셨다. 당시 유대인들은 샘물, 강이나 시냇물과 같이 흐르는 물을 생수라고 불렀다. 예수님이 자신을 생수라고 부른 이유는 물이 육신의 갈증을 해소하는 것처럼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가 영혼의 갈증을 해소하기 때문이다. 공허한 삶에 의미를 주고, 메마른 삶에 기쁨을 주고, 죽어가는 병든 삶에 새로운 생명을 준다. 하나님과 사귀면서 영적 안정을 누릴 때 이런 일이 일어난다. 이 생수는 나 뿐 아니라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세계에 생명을 나누어준다.

우리 인간에게는 많은 욕구들이 있다.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로부터, 안전에 대한 욕구, 친밀한 관계에 대한 욕구,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고 싶고, 자신을 성취하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이런 욕구들이 궁극적인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이런 욕구들이 다 채워진다 해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그 영혼이 공허하다. 이 욕구들을 채우는 것이 잘못이 아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생수의 반대말은 죽은 물이다. 이 세상이 줄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죽은 물이다. 우리에게 참 만족을 주지 못한다. 이 세상의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아서, 마실 때는 좋은데 마시고 나면 갈증이 더 심해지는 법이다.

생수의 반대말은 고인 물이다. 생수도 오래 고여 있으면 썩게 마련이다. 예수 믿은 지 오래 되어 고여 있는 정체된 신앙인도 있을 수 있다. 예수를 믿는 것은 그 안에서 매일 새로운 생수가 솟아나오는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영생에 이르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4)

왜 예수님만이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하는 분일 수 있는가?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의 한숨과 탄식의 말씀, 내가 목마르다.”(19:28)를 생각해 보자. 세상 모든 사람에게 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겠다는 분이 정작 자신은 목이 말라 죽고 있다. 군인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19:34)는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그의 몸에서 물이 흘러 나왔다. 그 물이 강과 같이 흘러 우리의 영혼을 소생하게 하는 것이 기독교의 역설적 진리이다.

 

서로 나누어보자.

(1) 예수 믿기 힘들 것 같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믿게 된 경우가 있는지 서로 대화해 보자.

 

(2) 내 속에서 날마다 생수가 흘러나오는가, 아니면 고여 있어 썩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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